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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대한민국, 기후위기에 응답하라

특별기고 | 더는 방관할 수 없는 기후위기, 그 심각성을 논하다

대체 1.5℃가 뭐길래

금요일이었던 9월 20일, 사상 최대의 ‘기후 파업’이 진행됐다. 세계적으로 160개국 이상에서 4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 21일 한국의 12개 도시에서도 ‘기후위기 비상행동’ 시위가 열렸고, 서울에서만 5천 명 이상이 행진에 참여해 최대 규모의 기후 시위를 나타냈다. 상당수는 청소년이었는데, 이들은 “미래가 없어질 상황이고, 정부가 미래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왜 학교에 가야 하는가”라고 외쳤다. 지난해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금요일마다 등교 대신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벌인 뒤 청소년 기후 행동은 들불처럼 전 세계로 확산됐다. 기후 위기는 청소년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어른들도 기후 파업에 동참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화석연료를 태우는 게 그렇게 나쁘고 우리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우린 똑같이 계속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나요. 어째서, 실제로는 계속 늘어나는 걸까요?” 전 세계적인 청소년의 기후 시위를 촉발한 그레타 툰베리가 애초 던진 질문은 이렇게 단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했던 문제가 한 청소년의 순수하고 윤리적인 물음으로 환기됐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는 말은 뭘까. 인간이 지구 생태계에 회복 불가능한 영향을 가하고 있는데,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 생물 멸종 속도는 과거보다 1만 배나 더 빨라졌는데, 이는 매일 200개 생물 종이 사라지는 수준이다. 토지 개발, 열대우림의 파괴, 유해한 대기오염, 곤충과 야생동물의 소멸, 해양 산성화와 같은 현상은 다가오는 재앙이 그저 SF영화의 소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과거 지구 역사상 다섯 번 있었던 대멸종은 자연적 기후 변화 때문이었는데,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여섯째 대멸종’을 인간이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는 당장 체감하기 어려운 문제일까. 시간이 갈수록 혹독한 영향은 분명해질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110년 동안의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치명적인 폭염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조차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가령 인위적인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한 열의 90%는 지금까지 해양으로 흡수됐다. 해양은 화석연료를 태워서 생긴 이산화탄소의 20~30%도 받아들였다. 일단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빙하가 녹는 속도가 서서히 빨라지면 태풍, 폭우, 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 재난의 빈도와 강도는 더욱 세질 수밖에 없다.

탄소 배출이 계속 늘어난다? 이것도 사실이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오늘날 지구 평균온도는 1℃ 상승했다. 마지막 빙하기에서 간빙기에 도달하는 데 약 1만 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4~5℃ 올랐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무려 20배 빠른 속도다. 같은 기간 동안 280ppm 수준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 415ppm 수준으로 늘어났다. 과학계는 기후가 되돌아올 수 없는 ‘찜통 지구’ 상태로 빠지지 않고 안전한 상태로 유지되기 위한 상한선을 1.5℃로 제시했다. 이는 2015년 196개국이 합의한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기도 하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늦어도 2020년 이전부터 하향 곡선을 그려 10년 뒤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야 하고, 2050년까지 순 배출 제로(0)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2016년 파리 기후협정이 발효됐지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7년 1.7% 증가했고, 2018년 2.7%로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9년 배출량도 큰 증가율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어쩌다 ‘기후 악당’ 국가가 됐나

이 지경이 되도록 각국 정부는 무엇을 한 걸까. 과학자들의 경고가 거듭됐는데도 말이다. 196개국이 지구 온도 상승을 1.5℃까지 억제하자고 합의했지만, 각국이 제출한 기후변화 대책 목표를 모두 달성하더라도 지구 온도는 3.5℃ 상승할 전망이다. 현재 정부가 마련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매우 안일하고 미흡하다는 의미다. 지구적 기후 파업은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국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를 두고 “기후 대책을 ‘논의’(talk)하기 위한 회담이 아니다. 논의는 충분했다. 기후와 관련해 ‘협상하는’(negotiation) 회담이 아니다. 자연은 협상하지 않는다. 이건 기후 ‘행동’ 회담이다”라고 강조한 이유다.

청소년을 비롯한 수백만 명이 시위를 벌이며 정부의 행동을 촉구했지만, 각국 정상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회의를 주재한 유엔 사무총장은 앞서 1.5℃ 목표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2030년까지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 배출 제로(0)를 달성하는 수준의 계획을 수립해줄 것을 각국 정상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진전된 기후변화 대책을 제시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했다.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처할 의지도 능력도 결여됐음을 스스로 재증명한 셈이다.

3박 5일 일정으로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의에서 연설했다. 하지만 연설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은 “한국은 파리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고공행진을 보이며 계속 증가해 과거 국제사회에 약속한 2020년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정부가 얼마 전 인정한 사실과는 상반됐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3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2017년 현재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 톤을 넘어섰고, 이는 정부 목표보다도 15.4%나 초과한 실적이었다. 녹색성장을 내세웠지만 석탄발전소 건설과 디젤차 구매 촉진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실제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국가 수장으로서 이전 정부가 행한 정책 실패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하고 적극적인 정책 의지를 표명했어야 했다.

게다가 한국이 정한 2030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1.5℃가 아닌 3℃ 수준의 온난화로 이어지는 목표라고 혹평한 바 있지만, 정부는 자화자찬에 빠져있다. 과감한 에너지 수요 억제와 효율 향상을 촉진하고, 재생에너지를 적극 확대하며 급증하는 석탄발전과 내연기관차의 조속한 퇴출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진전된 정책 의지가 담기길 기대했지만, 이번 대통령 연설은 기존 대책의 반복에 그쳤다. 심지어 한국이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에 앞장서 ‘기후 악당’으로까지 불리며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는 것을 정부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한국의 정치는 기후위기에 대해 너무 조용하다. 한반도의 온도 상승은 지구 평균보다 두 배나 더 빠르다. 폭염일수는 1980년대 8.2일에서 2010년대 15.6일로 90% 증가했다. 이대로 가다간, 기온·습도가 일정 기준을 넘어 체온 조절 기능을 방해하고 생명에 위협을 주는 ‘살인폭염’ 상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7위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지구적 기후위기에 대한 한국의 책임이 낮다고 할 수도 없다. 한국은 에너지와 곡물 자급률이 각각 6%와 23%에 불과한, 에너지와 식량 안보 취약국가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 침묵은 직무유기를 넘어서 중대한 범죄다. 외부로부터 강한 충격을 통해 변화를 강제당하기 전에 기후위기에 대한 능동적 준비와 대응을 착수해야 할 때다.

기후 파업 “우리 미래를 태우지 마세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의 대통령 연설이 있은 뒤 한국의 청소년들도 기후 파업을 진행했다. “환경이 먼저다” “우리 미래를 태우지 마세요”와 같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청소년 500명이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벌이고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수능이나 중간시험보다 기후위기가 더 무섭다’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정부와 국회가 청소년들의 절박한 외침에 응답할 수 있을까.

환경·인권·노동·청소년·농민·종교 등 시민사회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가 내세우는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부는 기후와 생태적 위기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며, 언론과 협력해 상황의 시급성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이에 역행하는 정책을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둘째,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제로(0)를 위한 구속력 있는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 2050년 이전까지 ‘0’으로 감축하기 위한 정책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논의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위기의 양상이 광범위하고 복잡하면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존 정부 정책결정이나 현행 국회 대의 방식에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정부 권한을 위임한 논의기구를 마련하고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불이 난 집에서 앉아있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집’인 지구가 불타고 있는데도 정부 대책은 안일하기만 하다. 우리 세금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데 쓰이고 기후 침묵의 정치가 우리를 더욱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의 모든 역량과 자원을 투여해 행동할 때다.

이지언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