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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블로그 다이어리

피해자는 반드시 현장을 다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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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SKT타워 앞 보행로 보도블록 이렇게 생겼어요. 자전거 타고 여기 지난다면 주의하세요. 특히 비 오는 날엔 더욱 더 말이죠!


5월의 마지막 날. 그날 아침엔 비가 왔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정신이 다시 아찔해온다.

보행로를 탔던 게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보도블록 때문에? 나란히 한 방향으로 결이 나있는 블록이었다. 바퀴가 결을 살짝 벗어나자마자 자전거는 고꾸라졌다. 물론, 나도 함께 고꾸라졌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 결은 보도블록이 빗물에 미끄럽지 않도록 일부러 해놓은 모양이다. 보행자를 위한 것일까? 자전거의 경우도 그럴지도 모른다. 이 결을 따라 똑바로 앞으로만 간다면 말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정해진 트랙을 약간만 벗어나려고 한다면, 특히 내가 타는 미니벨로처럼 작은 바퀴라면, 타이어는 다시 트랙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힘을 받고, 결국 균형을 잃게 되는 것은 순식간.

고속도로의 경사로에서 이런 방식의 트랙이 적용된 경우를 흔히 보는데, 차량의 주행 경로가 정해진 트랙을 거의 그대로 따를 것을 전제로 하는 데다가, 트랙에 비해 자동차의 넓은 바퀴나 이륜이 아니라 사륜이라는 점에서 안정감이 다르다. 

사실 자전거를 타면서 이런 변수는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청계천로의 경우, 차량의 서행을 유도하려는 의도인지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울퉁불퉁한 블록이 적용된 구간이 있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마치 비포장도로를 운전하는 것처럼 덜컹거리게 된다. 자동차가 이 정도면 자전거는 어떨까. 이런 도로의 설계 과정은 애초부터 자전거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겠지.

내 소식을 들은 몇몇 동료분들은 나를 꾸짖었다. 주위 걱정 끼치지 말고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라고. 각자 자신들의 자전거 경험담 사고담을 풀어놓았다. 결론은 서울에서 자전거는 안 될 말이고 대중교통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 타다가 혼자 빗길에 넘어져 다쳤는데, 반응이 이렇다. 난 말을 더 보태지 않았다.

개인의 선택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 오늘도 누군가는 자전거를 탈 것이다. 도로가 무서우면 주로 보행로를 이용하겠지. 누군가는 아찔한 기억 때문에 자전거를 창고나 베란다에서 다시는 꺼내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서울시 도로교통본부에서 내년부터 자전거 관련 부서를 해체하고 자전거 예산을 삭감하자고 할까.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정에 비해 현실은 나아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자고, 그리고 선택은 개인에게 놓아두자고.

오늘 현장을 다시 찾았다. 일주일 넘게 보관된 자전거를 찾아서 다시 페달을 밟았다. 넘어지면서 산산조각난 벨을 제외하면 다행히 자전거는 무사하다. 난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지만, 지난주에 처음 구매한 헬멧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써봤다. 어두워서 야광등도 켰다. 이참에 야광조끼도 구해볼까?

이지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 디카를 자전거에 장착하고 출근길과 퇴근길을 동영상으로 촬영할 예정이다. 자전거 출퇴근에 대해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말도 많다. 카메라를 튼튼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만 해결하면 바로 실행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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