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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서경식 “인권 심각히 침해하는 핵 재앙, 전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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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일상생활에는 별로 문제가 없어요. 기억도 제가 가지고 있으면 되니까요. 언제나 함께, 잘 때도 함께에요.”

 

사사키 타카시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곁에 앉아있는 아내의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작가 서경식(사진)이 그를 만나러 찾은 곳은 일본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 스페인 사상 연구자인 사사키 씨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서 퇴직한 뒤 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와 계속 살기로 결심했다.


작가 서경식이 후쿠시마 사고 2주기를 맞아 녹색연합 주최로 3월 16일 마련된 ‘증언불가능성의 현재-아우슈비츠와 후쿠시마를 잇는 상상력’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제공=녹색연합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멀지 않은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2011년 3월에 재난이 일어난 뒤 그도 98세의 어머니와 아들 부부와 손주를 멀리 떨어진 형님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사사키 씨 자신은 남기로 했다. 다른 곳으로 가면 치매를 앓는 아내의 병세가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가장 앞섰다. 현재 ‘긴급시 피난 준비 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에 남게 되면 위험과 불편한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도 모를 리 없다. 70대의 고령인 그가 책과 가재도구가 놓인 방에서 스스로 농성이라고 부르는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삶을 지탱해온 ‘뿌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바로 아내와의 관계 말이다.


방사능 재해로 많은 이들이 피난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그런데 “피난을 가는가, 마는가를 말하기 전에 그러한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근대적 주체라는 것을 먼저 짚어야” 한다. 서경식의 눈에 사사키 씨의 결심은 강요된 이분법에 대한 저항이다.


역사학자 한홍구,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와 나눈 대담집 <후쿠시마 이후의 삶>(반비, 2013)에서 서경식은 “(사사키) 선생님은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고자 농성하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이나 관료의 지시에 의해 그동안 일상을 영위해온 곳에서 하루아침에 ‘뿌리 뽑힘’ 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이지요. 이런 마음은 때로 향토애나 애국심과 혼동되지만,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와 기업이 공모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 피해를 불특정 사람들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핵발전소 가동은 전쟁과 꼭 닮아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처한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형식은 지워지고 “힘내라, 일본”과 같은 국가주의적인 슬로건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말 핵발전소 재해를 겪은 일본과 이웃나라 한국에서 치러진 선거 결과도 이를 말해준다.


서경식은 이와 관련해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가 말한 ‘안락 전체주의’ 다시 말해 “보다 편리한 생활, 보다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전체주의가 형성”되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농지를 잃은 농부, 피난을 감수하지 못 했던 노인과 환자, 뿔뿔이 흩어진 가족, 피해 보상 체계에서 소외된 외국인의 고통과 증언은 망각되거나 국가라는 이름으로 봉합된다.


이렇게 삶을 송두리째 뽑힌 이들의 심정을 과연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재난 영화와 같은 삶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초현실적 현실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전율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때론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달리 방법은 없다. 사사키 씨와 같은 여러 소중한 증언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3개월 뒤 서경식이 후쿠시마를 방문한 NHK 다큐 <마음의 시대: 후쿠시마를 걸어서>나 3월16일 강연 유튜브 영상은 참고할 수 있는 교재다(문의 녹색연합 070-3377-5440).


이지언


이 글은 탈핵신문 2013년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동영상] 후쿠시마 2주기: 공감과 변화의 시나리오, 3월 16일,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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