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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답이 아니다

교육청의 방사능 측정기 도입, 학부모들 '예산 낭비'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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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에서 방사능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을 놓고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서로 엇갈린 사업과 예산 편성을 추진해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과 11월 각각 ‘수입 농수산물 식품안전관리 종합대책’과 ‘학교급식 식재료 안전강화 대책’을 마련했다. 이번 대책에는 ‘서울시교육청 방사능 등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에 관한 조례’ 시행에 따라 급식 식재료에 대한 방사능 검사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울시와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설치해 운용하겠다고 밝힌 방사능 측정기의 검사 성능에서 차이를 보였다.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로는 식품에 대한 정밀한 방사능 측정이 어렵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부 교육청이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사용해 급식학교 현장에서 식재료를 검사한 뒤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경우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휴대용 측정기로는 방사성 핵종이나 미량의 방사성물질 농도를 파악하기 불가능하다. 식품 검사를 위해선 전문 장비를 갖춘 방사능 분석 인증기관에 측정을 의뢰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이유다.


방사능 검출은 측정 시간과 검사장비의 성능에 따라 달라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한 대부분의 방사능 검사기관이 운용하는 ‘고순도 게르마늄 감마핵종분석기’ 측정기는 3시간(1만초) 검사로 방사성 세슘의 경우 1킬로그램당 0.5베크렐(Bq)까지 검출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검사 시간을 24시간(8만초)까지 늘리면 0.1베크렐까지도 측정이 가능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식품 검사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측정기를 사용해 정부가 일본산 수입 식품에 대해 방사능을 검사해왔던 결과는 기준치 이하의 ‘미량’이었다. 식약처가 지난해 12월 20일 내놓은 ‘일본산 농산물·가공식품 방사능검사 미량검출 현황’을 보면 2011년 5월부터 현재까지 159건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는데, 방사성 세슘 농도는 평균 4~5베크렐 수준이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운영하는 고순도 게르마늄 감마선 분광시스템. 사진=서울시 식품안전정보(FSI)


방사능 기준치 이하의 '미량'은 검사 안 하나


문제는 5베크렐 정도의 방사능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안심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는 세슘의 식품 방사능 기준인 100베크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설치할 계획인 방사능 측정기도 정부의 방사능 기준에 맞춰졌다. ‘신틸레이터’ 방식의 해당 장비는 개당 550만 원 상당의 식품 전용 방사능 측정기로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을 비롯한 감마핵종을 검출할 수 있다. 휴대용 측정기와 달리 핵종 분석이 가능하고 30분 측정으로 1킬로그램당 세슘 100베크렐 그리고 70분(4,000초) 측정으로 50베크렐까지 검출 가능하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2월30일 교육청이 제출한 2014년 예산안을 의결해 ‘식재료 안전성 검사’ 사업에 식품 방사능 측정기 12대를 11개 지역교육청과 학교보건진흥원에 각각 설치하기 위한 6천6백만 원을 편성했다.


교육청이 도입하려는 해당 방사능 측정기로는 검출 한계인 50베크렐 미만의 방사능 오염 식재료에 대해선 ‘적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방사능 오염 식품 섭취에 의한 아이들의 건강영향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은 해당 측정기의 검사 성능이 교육청 조례의 취지를 충족시키기는 부적합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방사능안전급식 실현을 위한 서울연대회의 준비위원회’는 교육청의 방사능 측정기 설치 예산과 관련한 논평을 발표해 “검출한계치가 높은 측정기로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식품이 급식에 오를 위험을 방지할 수 없다”면서 “(교육청의 예산 계획은)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구색이나 맞추자는 안일한 태도이며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게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으로선 정밀 방사능 측정기를 도입하기엔 한계가 많아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정밀 방사능 측정기 도입은 전문인력 채용과 고가의 장비 설치와 유지관리비 발생으로 부담이 크고 방사능 전문 분석기관에 대한 검사 의뢰도 접수 물량이 포화 상태라서 별도로 분석을 요청하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방사능 측정기 관련 예산 낭비에 대한 비판은 안전한 급식 조례의 시행 이후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독선적인 계획을 추진한 과정에서 예견됐다. 학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마련된 교육청과의 면담에서 방사능 측정기에 관한 우려와 조언이 전달됐지만 이는 무시됐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협의팀 구성도 제안했지만 교육청 관계자는 식약처에 자문을 구할 뿐이었다.


학부모들의 목소리에 귀 닫은 서울시교육청

"불통이 예산 낭비 낳았다" 지적


2천여 개에 이르는 초·중·고 급식학교 전체에 대해 개별적으로 방사능 전수검사를 하는 무리한 방식의 계획보다는 식재료 유통 체계에서 효율적인 방사능 검사 방안을 교육청과 서울시가 공동으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 계획에 따르면 12대의 식품 방사능 측정기를 자체 도입해 운용하더라도 검사 횟수는 전체 급식학교의 30% 수준인 630회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학교급식에 공급되는 수산물의 대부분(89%)은 일반수산물 유통 과정과 동일하게 소비지 도매시장으로부터 수산물을 구입해 납품한다. 서울시는 가락·강서·노량진 수산시장을 비롯한 대형유통시장 중심으로 수산물을 채취해 검사해왔고 이를 더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2011년부터 방사능 정밀검사 장비 1기를 운용해 일본산 수산물을 비롯한 서울시내 유통 식품에 대해 검사해왔다. 서울시는 보건환경연구원에 고순도 게르마늄 감매핵종 분석기를 1기 더 추가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올해 1억5천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당장 전체 급식학교에 공급되는 식재료를 검사하긴 어렵겠지만, 서울시와 교육청이 시민사회와 함께 협력 방안을 만들고 예산을 장기적으로 편성해 분석 인증기관에서 정밀검사 장비를 확충해나가는 방법도 가능하다.


한편 서울시는 수산물 검사 물량을 확대하고 학교와 어린이집 식재료에 대해 수산물 납품 도매상 검사를 통해 관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가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특정 식품의 방사능 검사를 청구할 수 있는 ‘식품오염 방사능 검사 신청제’도 시행 중이지만 청구 건수가 저조했다며 홍보를 확대하겠다고 계획이다. 서울시에 방사능 검사가 신청된 건수는 2012년 33건에 이어 2013년 7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지언


다운로드

서울시교육청, 방사능 등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을 위한 학교급식 식재료 안전강화 대책(2013년11월, PDF, 953kb)


학교급식 식재료 안전강화대책.pdf


링크

서울시, 일본 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에 따른 수입 농·수·산물 등 식품안전관리 종합대책(2013년10월)

http://opengov.seoul.go.kr/section/307453


2014년도 서울특별시교육비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안(서울시의회)


식약처, 일본산 농산물·가공식품 방사능검사 미량검출 현황(2013년10월21일)

http://www.mfds.go.kr/index.do?mid=979&pageNo=3&seq=22334&cm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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