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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비상/칼럼

윤석열 인수위 '탄소중립'에 원전 끼워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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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왼쪽)과 김상협 상임기획위원이 1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2022년 4월 12일 --- 오늘 오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방향'에 관한 언론 브리핑을 진행했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선전포고로 풀이된다.

핵심은 원전의 부활이다. 표면적으로 브리핑 안건은 탄소중립이었지만, 주된 내용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얼마나 불합리했고 따라서 그간 배제되던 원전을 복권시켜 탄소중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원희룡 기획위원회 위원장과 김상협 상임기획위원은 브리핑 내내 원전을 반복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긴 싫었던 것인지 표현을 몹시 절제하고 순화시키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제시된 정책 방향을 보면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나 '합리적 에너지믹스 구성' 그리고 '탄소중립-녹색성장 거버넌스의 전략적 재구성'과 같이 듣기 좋지만 알쏭달쏭한 언어로 나열됐다.

브리핑 보도자료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맹비난하고 재생에너지를 매섭게 깎아내렸지만, 정작 브리핑 자리에서 두 인수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대립적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거나 "편가르기식 논의가 유감"이며 "정치적 해석을 최소화해달라"고 언론에게 신신 당부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에너지 전환 정책을 최대 정쟁의 소재로 물고 늘어진데다 정권 교체의 구실로 활용했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정치적 해석'은 금물이라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인수위 관계자는 공통적으로 '질서 있는 전환, 책임 있는 실현'이라는 슬로건을 강조했다. "전부 뒤집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라는 언급도 있었다. 이번에 발표된 정책 방향은 '중간 보고 성격'이며, 앞으로 사회적 의견 수렴을 거칠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K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개정 작업을 늦어도 올해 8월까지 진행하겠다는 둥 인쉬위 차원에서 방향과 일정을 이미 못 박은 듯 신호를 보냈다. 택소노미는 지난해 12월 정부가 확정해 발표한 바 있다. 3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인수위는 기존 정책 결정을 무효로 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차기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와 탄소중립 목표를 이어 가되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환해 이행하겠다는 의미인데, 이번 인수위의 정책 방향에서는 원전 확대 기조 이외에는 특별한 대책은 보이지 않았다. 녹색 기술 발전을 언급하며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강조한 대목 이외에 녹색금융의 본격화, 글로벌 협력 체계 강화와 같은 방향은 새롭거나 구체적 내용이 없었다.

대체 인수위는 원전을 제외하고는 탄소중립에 대한 전략과 철학이 없단 말인가! 심지어 대선 공약으로 스스로 내건 '2035년 내연기관차 신규 등록 금지'과 같은 방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다른 분과에서 다루기 때문에 이번 브리핑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해명할 수 있겠지만, 그럼 사회 경제 구조의 전환을 요구하는 탄소중립이란 제목이 아니라 '에너지 정책 방향'이라고 제시했어야 한다)

그럼, 인수위가 원전 확대의 명분으로 제시한 근거는 합리적인가. 우선, 탄소중립 목표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 역행한다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2021년 온실가스 잠정 배출량이 전년에 비해 4.16% 증가했다고 제시했다. 공식적으로 확정된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는 2020년 통계까지인데, 인수위는 2021년 잠정 통계를 인용했다(심지어 2022년 전망도 제시했다).

좋은 지적이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빠르게 감축해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2021년 반등하는 추세를 나타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녹색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성적표가 드러난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은 이런 방향을 일부 반영했지만, 국정 철학을 바꿀 정도의 힘을 갖진 못했다. 제도 혁신이 시도되지 못했을 뿐더러, 유류세 한시 인하와 같은 그린 뉴딜과 상충되는 화석연료 보조 정책을 관성적으로 반복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전년에 비해 무려 6%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를 원전 가동률이라는 하나의 변수로 해석하는 인수위의 설명에 눈을 의심했다. 브리핑에서 정책 추진을 "끼워맞추듯 하지는 않을 생각"이라는 발언이 무색하게도, 인수위는 원전 확대을 합리화하기 위해 무리한 접근을 시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탈원전으로 인해 한전 부채가 증가하고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주장은 5년 내내 반복했던 레퍼토리다. 탄소중립 목표 이행에 따라 GDP가 감소해 경제에 부담이 준다는 수치를 제시하는 대목에서는 KDI '비공개 보고서'를 근거로 대기도 했다.

탈원전에 따른 한전의 추가 비용 발생 원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 자료

인수위는 한전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원전 정비일수가 늘어 이용률이 낮아졌고 이로 인해 한전의 추가 비용이 8.1조원이 발생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인수위 자료를 보면 특히 그 중에서도 '특수상황(비리, 지진, 공극 등)'으로 인한 구입비 영향이 5.2조원으로 가장 컸다. 원자력계가 과거 저지른 비리와 공극과 같은 부실 시공 문제를 보강하기 위해 정비일수가 늘어났다고 스스로 제시하면서 다시 '탈원전 정책'의 부당한 효과로 설명하는 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원전을 최소한의 규제 기준에 맞게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상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전 가동률만 높이자는 게 차기 정부의 원전 운영 철학인 것일까.

한전 부채와 전기요금 인상 문제는 전력 공급의 70%를 화석연료(석탄, 가스)에 의존하는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 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국내 연료 가격은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유럽 등 각국이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을 제한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로 시선을 돌리는 추세다. 지금 인수위처럼 원전만 바라보다가는 문제만 악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한전이 고질적 부채를 타개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으로 연료비 연동 전기요금 제도를 2021년부터 도입했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무조건 값싼 수준으로만 규제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연료비 원가를 어느 정도 탄력적으로 반영하겠다는 방안이다. 이런 원가 연동제는 당초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을 추진하던 제도였다. 그런데 탈원전 비난에 너무 열중한 탓일까.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였다. 부채 증가에 허덕이는 한전은 지난해 예고한 전기요금 기준연료비 인상을 4월 결국 단행하면서 공약이 무색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미흡하다는 비판은 시민사회로부터도 제기됐다. 탄소중립 방안이 재논의되고 재수립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원전만 앞세워 탄소중립 논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면 이런 탄소중립이야말로 실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생태적 위기는 원전을 둘러싼 소수의 이익 추구와 소모적 논쟁으로 낭비할 시간조차 없다.

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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